![]() | 바리데기 - ![]()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인상깊은 구절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바리데기를 모두 읽은지는 일주일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회사문제로 몇가지의 고민이 있다보니 블로깅은 조금 뒷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바리"의 인생에 비하면 나의 고민들은 배부른 고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한국소설을 읽다보면 문체의 기교에 치중한 나머지 이야기의 본질인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은 있으나 이야기는 없는 그런 소설들이 많다. 그렇다고 문장이 엉성하더라도 이야기만 재밌으면 된다는 그런 얘기는 아니다. 현란한 문체의 기교보다는 독자들이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기교이다.
처음 "바리데기"를 펼쳤을 때도 인터넷상으로 많은 찬사를 보았던 책이었지만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의 많은 소설들이 진부한 사랑이야기는 제쳐두고라도 일제강점기, 6.25 사변, 군사정권 시절 등의 시대적인 아픔과 슬픔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분개하고, 가슴을 지어뜯으며 읽을 수 있겠지만, 난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황석영님의 이 소설도 그런저런 소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처음에 이북사투리가 나오길래 "아~ 6.25 전쟁 때 북한 지역이 배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읽는데 오래걸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6.25 전쟁시기는 아니었고, 요 근래의 북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 1990년대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북한의 생활을 잘 그려내지?'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1990년대 북한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이 수해로 해외원조를 받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맞을 것이다. 주인공은 "바리"라는 여자로 7공주 집안의 막내이다. 아버지가 부위원장급의 위치인 것으로 보아 그리 궁핍한 배경은 아닌 듯 하다. 다만 바리의 외삼촌이 밀매를 하다 걸려서 남선(대한민국)으로 도망치기 전까지는... 바리의 시련은 바로 외삼촌이 남선으로 도망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바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기"를 타고 났던 것이다. 귀신을 보고 그들과 대화를 하며, 칠성이(바리가 집에서 기르던 개의 이름)와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칠성이가 죽은 후에는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하며 칠성이를 만나고 할머니도 만난다. 이 특별한 바리의 능력은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소설의 진부한 소재를 가지면서도 내가 이책에 빠져들 수 있었던 까닭은 이런 특이한 설정뿐만 아니라, 독특한 글 전개방법도 있었다. 이 책에는 대화나 독백부분이 따로 없다. 흔히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나타내는 곁따옴표(")와 생각이나 독백을 나타내는 홑따옴표(')가 없다. 상황을 묘사하다가도 갑자기 대화가 나오고 생각이 나오고 독백이 나온다. 그런데 그게 전혀 혼란스럽거나 어색하지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이에게 묘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구수한 이북사투리와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수십페이지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이 리뷰를 바리데기를 읽은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작성한 것이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바리가 아들을 잃고나서 며칠동안 심한 열병을 앓으면서 꿈을 꾸는데, 그 시간동안 바리는 다시 저승으로 가서 할머니를 만나고 칠성이의 인도를 받으며 생명수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이 책의 클라이막스 부분이기도 하다.) 그 여정동안 바리는 많은 원혼들로 부터 자신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자신들이 왜 허망하게 죽었냐고. 그 원혼들 속에는 바리의 아들을 죽게했다고 믿는 증오의 대상인 사람도 있지만, 전혀 관계없는 자들도 있다. 바리는 그 물음에 생명수를 찾고 돌아오는 길에 대답해주겠노라고 한다. 결국 생명수를 찾기는 했으나 가져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그 원혼들의 물음에 그들이 왜 죽었는지, 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답해준다. 아마도 이부분에서 황석영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함축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책 뒤에 적힌 서평에서도 나와있지만, 한국소설이 재미없다는 인식을 어느정도 해소해주는 소설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진부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소재이지만, 이야기속으로 몰입시키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한국소설이 흥미를 읽어가고 있다느니, 문체의 기교에만 신경쓴다느니, 너무 리얼리즘만 강조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만큼 잘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가지고 있는 강점들에 더해서 재미와 몰입도를 선사하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우리의 책을 열광하면서 읽을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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